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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투자가(1) - 워런 버핏

by 포리phori 2022. 5. 12.

워런 버핏은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투자가일 것입니다. 그는 현재 버크셔 해서웨이의 회장 겸 CEO이며, 20225월 현재 1,160억 달러가 넘는 순자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난 버핏은 사업에 관심을 갖고 젊은 시절부터 투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47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와튼 스쿨에 입학한 뒤 19세에 네브래스카 대학교로 편입, 졸업했습니다. 이후 콜롬비아 경영대학원을 졸업했고, 그곳에서 벤저민 그레이엄이 개척한 가치투자 개념을 중심으로 투자철학을 구상했습니다. 1956년에 버핏 파트너십을 설립했고 이후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섬유 제조회사를 인수하여 다각화된 지주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버핏은 1970년부터 버크셔 해서웨이의 회장 겸 최대 주주입니다.

버핏은 어려서부터 사업과 투자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7살 때 오마하 공립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의 첫 번째 사업 중 하나는 껌, 코카콜라 병, 주간지를 집마다 판 것입니다. 고등학생 때는 신문 배달, 골프공과 우표, 자동차 세공 등을 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버핏과 친구는 25달러를 들여 중고 핀볼 기계를 구입해 동네 이발소에 비치하였습니다. 몇 달도 되지 않아, 그들은 세 곳의 이발소에 여러 대의 기계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 들어간 버핏은 영원한 스승이며 전설적 투자자인 벤저민 그레이엄의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레이엄에게는 스무 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그들 중 일부는 버핏보다 나이가 많았고 이미 월스트리트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레이엄은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자주 사용했는데 버핏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 버핏은 그레이엄의 투자회사인 그레이엄-뉴면에서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하겠다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하였습니다. 오마하로 돌아가 아버지 회사인 버핏-스클레니카&컴퍼니에서 주식중매인으로 일하는 동안 데일 카네기 대중연설 과정을 수료했다. 데일 카네기 강좌에서 연설 과정을 이수한 버핏은 오마하 대학에서 투자원칙을 가르쳤다. 그는 여러 학기 동안 강의했는데 주로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의 저서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1954년 그레이엄은 버핏에게 전화를 걸어 일자리를 약속했습니다. 뮤추얼펀드인 그레이엄-뉴먼은 몇 가지 원칙에 따라 주식을 매수했다. 그레이엄이 가장 좋아하는 원칙은 기업의 운전자본보다 3분의 1이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주식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레이엄-뉴면에서 버핏은 모든 일에 매우 빨리 움직였습니다. 그레이엄은 버핏이 제자 중에서 가장 뛰어나며 자신과 워런은 서로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레이엄은 많은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100만 달러 이상을 소유한 채 죽는 사람은 바보라고 말했습니다.

1956년 더는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마음이 없었던 버핏은 오마하에 도착하자마자 가족과 친구들로 구성된 조합을 결성했습니다. 그는 조합의 이름을 Buffett Associates Limited(버핏어소시에츠)라고 지었습니다. 1959년 오마하에서 평생을 함께할 사업 파트너 찰리 멍거를 만났습니다. 멍거는 훗날 버크셔의 부회장이 되었습니다. 워런은 투자자들을 모아 펀드에 투자할 것을 권유하며 비밀주의를 고수했는데 정보 누설을 막는 것은 물론 간섭을 방지해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처음 5년간 버핏의 조합이 251%의 누적수익률에 달했지만 다우 지수는 74% 상승했습니다.

버핏은 적절한 기업에 투자해서 오랫동안 주식을 가진 복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므두셀라 기법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므두셀라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 그가 말하는 므두셀라 기법이란 오래 산 인물로 알려진 므두셀라처럼 오래도록 안정적인 기업에 긴 시간 투자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는 "10살 때 1,000달러도 수익률 10%에 복리를 적용하면 10년 뒤엔 2,600달러, 50년 뒤면 117,400달러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라고 하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그는 미국 주식을 매수하라고 권장하였습니다. 그의 원칙은 단순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탐욕을 부릴 때 공포심을 갖고, 다른 사람들이 공포심을 가질 때 탐욕을 부리는 것이다." “펀더멘탈(내재가치)이 주가보다 높게 반영되는 기업들만이 불황에서 생존할 수 있으며 그런 좋은 회사를 사야 한다.” “나쁜 뉴스들이 투자자들에게는 최고의 친구이다.”

버핏은 자기 돈 관리에 관심이 없거나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인덱스 펀드를 추천합니다. 버핏은 적극적인 경영이 장기적으로 시장을 능가할 수 있다는 데 회의적이며 개인과 기관투자가 모두에게 광범위하고 다각적인 증시 지수를 추적하는 저비용 지수 펀드로 자금을 옮겨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2007S&P 500 지수 펀드가 터무니없이 많은 수수료를 부과하는 헤지펀드를 능가할 것이라고 수많은 매니저와 내기를 했습니다. 2017년까지 인덱스 펀드는 버핏을 상대로 베팅한 헤지펀드를 모두 앞질렀습니다.

버핏의 특이점은 막대한 재산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검소함으로 유명하다는 것입니다. 1958년 당시 31,500달러를 주고 산 집에서 아직도 살고 있고, 매일 아침은 3달러가 조금 넘는 맥도널드 아침 메뉴로 해결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검소한 삶을 살지만 자선 재단을 설립해 막대한 돈을 기부하고 있고, 소득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부자증세를 주장합니다. 그는 자기 재산의 99퍼센트를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자선 사업에 기부하겠다고 공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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